용봉산,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우리들 마음은 갈바람이 되어
책상 앞에서 사투만 벌이다가 모처럼 서울을 벗어나서 용봉산을 오른다.
용이 봉황처럼 날아오른다는 용봉산(龍鳳山), 이름부터 상서롭다.
용봉산은 충청도 홍성군의 진산으로 가야산 덕숭산과 함께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의 높이는 381m로 그다지 높지 않으나 산 전체가 기암괴석과 암봉들로 이루어져서 100대의 명산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산행 들머리, 석불사의 후덕한 마애석불이 햇살을 거리낌 없이 받고 있다.
사찰의 안내판이 인근에 소원바위, 만물바위, 할머니바위가 있다며 발길을 붙잡지만 외면하고 산길로 접어든다.
이 산이 무수한 바위들의 전시장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초입부터 바위들이 제 자랑을 벌리니 산 속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멋진 바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사뭇 가슴이 떨린다.
함께 오르던 울긋불긋한 일행들의 꽁무니는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산행할 때에 맨 뒤에서 걷는 처지가 되었지만 이렇게 천천히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후미를 봐 주신 대장님께는 미안하기 그지없다.
바위 길을 살금살금 오르니 이게 웬 일인가!
파란하늘과 흰 구름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런 경관을 처음 보았을 리 없지만 그만 코끝이 찡해진다.
나는 왜 파란하늘만 보면 가슴 속에서 쏴 하고 밀려오는 아련한 파도소리가 들리는지 모르겠다.
흰 구름은 한 순간도 멈춰 서지 않는다.
구름은 소리 없는 미세한 움직임으로 형태를 자꾸만 바꾸어서, 나는 여태껏 구름의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
마음을 구름에 비유한 까닭을 알 것도 같지만, 구름 속으로 날아오르고픈 마음은 무엇일까.
벼랑 끝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닭의장풀이 꽃은 작고 여리지만 꽃빛은 묘한 매력을 품어낸다.
꽃이 크다고, 명예가 있고 부자라고 모두 눈길을 끄는 것은 아니다.
올 해 들어 처음 보는 억새이다.
앞 서 가는 남정네들이 이 억새에게 눈인사라도 했을까?
하기야,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며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자 마음의 갈대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남자 마음의 갈대는 땅 바닥까지 낭창낭창 휘어져서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기가 더 힘들지 모르겠다.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는 일행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늘씬한 소나무들이 날렵하게 목을 길게 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는다.
바위들이 소나무에게 눈길을 저희들에게만 주라고 연두 빛 이끼로 위협을 한다.
용봉산 정상이다.
도착한 일행들이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아우성이다.
하늘이 푸른색을 더 끼얹고 소나무들이 진초록으로 박수를 치고 햇빛마저 붉은 색을 감추고 흰빛을 마구 뿜어낸다.
가을이 신바람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멀리 정자 안에 일찍 도착한 일행들이 보인다.
아마도 점심을 저 곳에서 먹을 것 같으니 서둘러서 걸어야 한다.
나머지 일행들이 이름도 모를 바위에서 사진을 함께 찍자며 올라오라지만 발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왼쪽 무릎이 이미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내 바지를 걷어 올리면 무릎의 활력을 원활하게 해주는 담요 비슷한 보호대가 종아리를 온통 덮었다.
무릎에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서 케토톱을 붙였고, 옷 위로는 무릎 보호대가 압박하고 있다.
반바지를 입어도 무더운데 옷 속에 이렇게 중무장을 했으니 오죽 땀이 흐르겠는가.
그렇다면 무릎이라도 얌전해야하는데 그도 아니고 체력마저 딸린다.
내가 나를 생각해도 안타깝지만 내색을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점심을 먹는 일행들이 최영 장군의 활터에 세워진 정자 안을 가득 매우고 밖에 까지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점심으로 가져온 김밥이 슬쩍 맛이 갔다.
이마저도 내색을 못하고 과일과 커피로 점심을 대신한다.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입산금지가 풀린 철원의 금확산을 산행할 때도 아침에 준비한 김밥이 쉬어서 먹지 못하고 물로 배를 채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하늘에서 너는 먹는 것에 너무 신경을 안 쓴다며 빙그레 웃으실 것 같다.
멀리 노적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넉넉한 점심시간에 일부 일행들이 그쪽의 봉우리로 건너가서 사진 찍기가 한창이다.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흐뭇하다.
건너편이 잘 보이는 전망 좋은 바위는 남은 사람들이 사진 찍느라 쉴 틈이 없다.
사방이 뚫려서 풍광은 어느 곳이나 빼어난다.
연리지를 닮은 멋진 소나무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니, 동심으로 돌아가서 손 그네를 타 보라고 한다.
찍혀 나온 사진을 나중에 받아보니 겸연쩍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니어서 빙그레 웃어본다.
이번 산행은 사진 찍어 주는 분들이 많아서 사진이 풍년이다.
다시 길을 외돌아 노적봉을 향하여 오른다.
퇴색한 싸리 꽃이 안간힘을 쓰며 남은 생을 햇빛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황혼의 붉은 싸리 꽃, 여전히 소박하고 정갈하다.
바위들이 무수히 스쳐가지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코끼리 엉덩짝만한 커다란 바위잔등으로 올라가지만 나는 겁난다.
그녀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 여인들을 어이할꼬.
두 여인들이 하늘하늘 바람이 되었다.
아니, 뭉실뭉실 구름이 되었다.
손목에서 휘날리는 스카프를 보니 그대들은 갈바람이구려.
산행대장도 빠질 수 없다고 하늘로 솟구친다.
대장이여, 그대가 손가락을 찔러대는 곳이 설마 하늘은 아니겠지요.
여인들이여, 그대들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요.
나무가 바위의 가슴으로 파고 든 것인가
바위의 심장이 터져서 나무로 싹 튼 것인가
소나무 하나 허공에 떠 있다
무딘 바위벽에 수없이 부딪친 풀씨
손발이 터지고 머리가 깨지고 영혼마저 으깨진 넋
바람이 되어 허공에 뿌리를 내린다
공중에 둥둥 매달려서 미식미식 멀미를 멈추고
한 쪽 다리라도 좋으니 마음껏 뻗어보고
다른 나무들처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서고 싶다
키를 키울 수도 몸무게를 늘릴 수도 없어
자유와 꿈을 상실한 서러운 존재
차마 소나무의 기상마저 외면할 수 없어
오늘도 탕 빈 중심에서 하얀 고독을 삼킨다
솟대바위, 행운바위, 물개바위, 삽살개바위를 지난다.
악귀봉의 허허한 바위에서 걸어왔던 길을 돌아 본다.
용바위를 지나고, 도마뱀이 물고기를 삼키는 바위도 지난다.
구름 한 점이, 그녀들이 뱀의 먹이가 될까 염려스러워서 차마 떠나지 못하고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병풍바위 위의 의자바위에 앉아서 왕이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마른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시원한 캔 맥주를 대령하라며 바위들을 호통 치는 못난이의 목청이 사뭇 크다.
사라가 놀라서 내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바위 사이로 귀를 쫑긋거린다.
산 아래에서 건설 중인 내포 신도시도 잠시 손놀림을 멈추고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들의 산행 이야기가 끝이 난줄 모르나 보다.
2014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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